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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율곡 이이, 과거시험 9번 장원급제 천재 탄핵 선조 신임

가정의 달 특집 2부작 제2편 율곡 이이

조선의 유학을 대표하는
대학자 율곡 이이.

오천 원권의 모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가,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으며
끊임없이 개혁을 호소한 정치가였다는데!

‘학자’란 타이틀에 가려져 있던
율곡 이이의 참모습!

시대의 스승이자 개혁 정치가였던
그의 삶을 파헤쳐본다.

 

■ 유학자 율곡 이이의 방황, 불교에 귀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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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4년 열아홉 살의 율곡 이이는 돌연 유학 공부를 중단하고 금강산으로 가출한다. 그 후 금강산의 한 절에 들어가 불경을 공부한 율곡 이이. 그는 승려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부처’라고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던 사회. 과연 율곡 이이는 불교에 귀의한 것일까? 이때의 가출은 훗날 율곡 이이의 삶에 큰 걸림돌이 된다. 심지어 그가 과거를 보러 갔을 때 성균관 유생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시험장에 들어서는 것조차 거부당할 정도였는데.... 9번이나 장원으로 급제한 조선 최고의 ‘뇌섹남’ 율곡 이이, 그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만나본다.

■ 끊임없이 개혁을 호소하며 경장(更張)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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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강건하게 만들고자 했던 율곡 이이의 포부는, 1567년 14대 왕 선조가 즉위하면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주장한 것은 바로 ‘경장(更張)’. 묵은 관습과 고착화된 제도의 폐단을 올바르게 시정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대의 시급한 과제를 경장으로 보고 선조에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선조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으며 선조의 잘못된 정치를 신랄히 비판하는데...

“전하께서는 의관만 정제하고 가만히 앉아 있더라도
끝내 보존할 수 있다고 여기십니까?
아니면 바로잡아 구제하고 싶어도 그 대책을 모르고 계시는 것입니까?”
- 선조수정실록 1582년 9월 1일

정사의 폐단과 백성의 고통을 꿰뚫어본 율곡 이이. 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경장을 외친 현실정치가이자 진정한 개혁가였다.

■ 율곡 이이의 탄핵, 그러나 선조의 전폭적 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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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3년 6월, 조정에 율곡 이이를 탄핵하는 상소들이 빗발친다. 율곡 이이가 선조의 부름을 받고 가던 중 갑자기 일어난 현기증으로 선조를 알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소의 빌미가 된 건 따로 있었다. 이른바 전마 사건 때문이었다. 이탕개를 중심으로 한 여진족이 함경도를 포위했을 당시, 병조 판서로 있던 율곡 이이는 활 쏘는 사람들을 뽑아 북방으로 투입시키면서 군마(軍馬)를 바치는 사람은 면제해줬는데, 이를 선조에게 미리 보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신들은 율곡 이이의 파직을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선조는 오히려 율곡 이이를 공격한 인물들을 귀양 보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직을 요구하던 율곡 이이에게 선조는 이조 판서직을 맡기며 전폭적인 신임을 보인다.

1584년 1월, 율곡 이이는 49세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백성과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개혁을 부르짖은 정치가 율곡 이이. 누구나 알지만 자세히 알지 못했던 그의 삶에 대해 5월 15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가정의 달 특집 2부작 제2편 율곡 이이 편에서 이야기한다.


이이 십만양병설은 명확한 출처가 없는 카더라 통신일 뿐이며, 그마저도 당시 정황을 미루어 볼 때 허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이의 십만양병설이 널리 퍼진 이유는, 후대 서인들이 자신의 정신적 조상인 이이를 신격화하고, 정적인 남인의 정신적 스승인 유성룡을 폄하하는데서 비롯되었다. 또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기록에 있다는 이유로 엄밀한 교차 검증을 하지 않은 채,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데도 문제점이 있다.


과거급제를 9번 한게 아니라 과거시험에서 9번 장원 즉 수석을 따낸겁니다. 그래서 율곡선생을 구도장원공이라 하는거죠.


그리고 과거시험이 1번 시험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소과의 초시,복시와 대과의 초시, 복시, 전시의 5번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지라 처음 4번시험에서 장원을 해도 마지막 전시에서 떨어지면 꽝인 시스템이였기 때문에 이이처럼 9번 장원을 하는 경우도 나오는거죠.


율곡이이가 장원을 한 시험들은 아래에(생원과와 진사과는 소과의 두가지 종류입니다.)

생원과 초시 : 29세

생원과 복시 : 29세

진사과 초시 : 13세, 29세

진사과 복시 : 21세

대과 초시 : 29세

대과 복시 : 29세

대과 전시 : 29세

특별시 : 23세


이이 프로필

작가

이이는 조선시대의 문신, 성리학자이며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 작가, 시인이다. 관직은 숭정대부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성혼, 송익필, 김장생 등과 함께 기호 지역이 기반인 서인의 종주로 추앙된다. 아홉 차례의 과거에 급제해 구도장원공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위키백과

출생: 1536년 12월 26일, 강릉시

사망: 1584년

부모: 어머니 신사임당

친지 할아버지 이천, 재종조부 이기, 이행, 누이 이매창, 형 이번, 형 이선,

동생 이우, 종증조부 이의무, 친족척 이순신, 사돈 김장생[2], 서녀사위 김집

배우자 정실 곡산 노씨 부인

측실 김씨

측실 이씨

자녀 이씨(서녀)

종교 불교 → 유교(성리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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