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프라이즈 무하마드 알리, 안토니오 이노키 세기의 대결 동영상 승리자 누구?





서서만 공격하는 알리와 누워서 공격하는 이노키, 결국 무승부

 


누워서 공격하는 이노키

알리와 이노키의 대결이 성사된 계기는 다소 우연적이다. 당시 일본 아마추어레슬링 협회장과 알리가 만난 자리에서 알리는 "100만 달러를 나에게 도전하는 동양인에게 상금으로 준비해 놓았다"라는 발언을 하였고, 이 발언이 기사화되자, 이노키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집요하게 시합에 응할 것을 요구, 결국 시합을 성사시킨다.

시합이 성사되었어도, 룰과 개런티 문제는 시합 직전까지 합의를 계속했다. 그 와중에 이미 떠벌이(The Lip)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만큼 말싸움을 잘했던 알리와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입심을 자랑하고 있는 이노키의 장외 신경전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 시합은 요즘의 이종격투기 룰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됐다. 우선 시간에서는 복싱과 비슷하게 1라운드 3분, 15라운드로 진행됐으며, 글러브 착용 여부는 자유였다. 결국 알리는 복싱 글러브를 착용했고, 이노키는 맨손으로 출전했다.

경기결과는 알려진 데로 무승부였다. 선 상태보다는 누운 상태가 더 많았던 이노키에게 알리는 펀치를 적중시키지 못했고, 누운 상태에서 이노키는 알리에게 간헐적으로 킥공격을 했으나 이것도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지금이었다면, 일부러 눕거나 공격을 하지 않는 선수에게는 경고를 주었을 테지만, 이때는 그러한 것이 규정되기 전이었기에 사람들이 보기에 지루하기만 한 재미없는 대결이 진행되고 말았던 것이다.

시합은 재미없었지만, 알리와 이노키의 대결이 가지는 상징적인 의미만큼은 이종격투기의 효시로서 기억될 필요가 있다.

이종격투기의 효시

 


두 선수의 시합전 신경전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76년 6월 26일, 일본 도쿄의 부도칸(武道館)에서는 세계최초의 이종격투기 시합이 벌어졌다. 무하마드 알리와 안토니오 이노키의 대결이 바로 그것이다.

알리와 이노키의 대결 이전에는 이종(異種)격투 시합이 없었느냐 하면 물론 그것은 아니다. 저 유명한 극진가라데 최영의의 수많은 타류 시합이 있었고, 기무라 마사히코와 엘리오 그레이시의 유도와 유술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 있었으며, 이외에도 많은 타류 시합은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리와 이노키의 대결을 세계최초의 이종격투기 시합으로 손꼽는 것은 전혀 다른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는 선수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대결을 펼쳤기 때문이다. 대중스포츠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종격투기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현재는 종합격투기라는 정형화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내며, 종합격투기 자체가 또 하나의 새로운 무술종목으로까지 여겨질 만큼 발전했지만, 그 뿌리에 알리와 이노키의 이종격투기 시합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노키

 


대결이 끝난 후 두 선수의 포옹

이 안토니오 이노키가 지난 21일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대한프로레슬링협회 회장 이취임식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자신의 많은 라이벌들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지금도 오로지 안토니오 이노키만은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링에 올라 이찌, 니, 산, 다!(하나, 둘, 셋, 가자! - 이노키식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행사에서도 이노키는 예의 자신의 구호를 외치고, 한국의 프로레슬링과 격투기의 발전을 위해 힘을 다해 돕겠다는 약속을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노키는 북한에서 격투기 대회를 열겠다는 약속을 비롯해 한국에서 말한 몇몇 이벤트 및 대회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지키지 못하는 말을 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노키의 모습에는 자신감이 넘쳐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누가 뭐래도 나는 이 거친 프로레슬링과 격투기의 바닥에서 40년 넘게 살아남아 왔다구하는 말이 담겨 있는 듯 했다. 어쨌건 이노키는 그 바닥에서는 거물이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만약, 현재와 같은 룰로 알리와 이노키가 대결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무의미하지만, 상상은 자유이므로 무토 독자여러분의 의견을 따를 뿐이다.






얼마전에 살짝 충격을 받은게 그 경기의 규칙입니다.

 

1. 스탠딩 상태에서 킥 금지

2. 던지기 기술 금지.

3. 그라운드 기술 금지.

4. 엘보우 금지.

5. 그라운드 공방 10초 제한

6. 위와 같은 룰이 있다는 것을 공표하지 말고 함구할 것.

 

 누워서 이노키 포지션을 하고 알리에 맞설생각을 못했던 이노키를 겁쟁이로 표현했던 사람도 있고 이종격투기끼리는 승부를 내기가 어렵구나 쉽게 누가 이긴다고 말하기 어렵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었던 경기인데

얼마전에 알게된 저 경기의 규칙은 참... 저런 규칙이 아니면 경기를 안하겠다고 해서 이노키는 수락하고 경기를 했고(전 수락한것도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뭐 할게 없는 이노키가 이노키 포지션을 쓸수 밖에 없었던건 너무나도 당연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노키가 왜 태클을 안하고 저런 쫄 경기를 펼쳤는지 이해를 할수가 없었는데 어느정도 의구심이 풀렸네요 ;

출처 - http://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1974290


미국의 전직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 프로필

 

켄터키 주 루이빌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맬컴 엑스 등이 이끄는 이슬람운동에 가담하기 전까지 이름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였다. 알리는 1975년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30년 동안 파킨슨병으로 투병해 오면서도 권투선수로써 위상을 날렸던 무하마드 알리는 2016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고, 전 세계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애도를 표했다. 위키백과

출생: 1942년 1월 17일, 미국 켄터키 주 루이빌

사망: 2016년 6월 3일, 미국 애리조나 주 스코츠데일

무하마드 알리  키: 191cm

배우자: 무하마드 알리  아내 로니 알리 (1986년–2016년), 더보기

자녀: 라일라 알리, Maryum Ali, Rasheda Ali, Asaad Amin, 하나 알리, Khaliah Ali, Jamillah Ali, 미야 알리, 무하마드 알리 주니어

61번 경기를 하였으며, 56번 승리했고(37ko승) 5번 졌다.

무하마드 알리 사망이유 패혈증성 쇼크 입니다.


<< Extreme Surprise >> 

Ⅱ. 세기의 대결

 1976년 일본,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세기의 대결이 시작되는데… 뜻밖에도 대결의 두 주인공은 세계적인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 안토니오 이노키였다! 큰 화제를 부르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두 선수의 세기의 대결!


 

도움이 되셨다면 공감버튼을 눌러주세요

공감버튼 은 큰 힘이 되어 줍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